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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이야기

방사능의 실체를 밝혀낸 마리 퀴리의 생애와 과학적성과

by @JUDA 2024. 6. 11.

방사능연구에 힘쓴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
마리 퀴리

◈ 마리퀴리(Matie Curie)의 생애와 업적

방사능 연구의 선구자로서 방사능의 성질을 연구하여 라듐과 폴로늄이라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여 방사능이라는 개념을 처음 정의하고, 과학 분야에서 두 번의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인물인 마라 퀴리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생애

마리퀴리는 186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녀는 공부를 이어가며 꿈을 키웠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고등교육까지 받는다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독학으로 공부를 이어나갔다. 1891년 그녀는 파리에 있는 소르본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였다. 여성이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흔하진 않았으나 성실한 성격의 마리퀴리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이후 이곳에서 피에르 퀴리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부부는 학문적 뜻을 같이하여 여러 가지 연구를 함께 하였다. 그중에서 부부는 방사능 연구에 집중하게 되는데 당시 방사능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어 알려진 게 없는 상태였으므로 방사능 연구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과 도전과제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연구와 실험을 계속 이어나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때에 마리는 피치블렌드라는 광물에서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두 가지의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분리하게 된다. 이 업적으로 인하여 마리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것은 여성이 받은 최초의 노벨상이다. 마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라듐의 성질을 더 면밀하게 연구하기 시작하여 1911년에 화학분야에서 두 번째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것은 이전에는 없던 일로 물리학과 화학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 된다.

 

이렇게 성공한듯 보이는 마리에게도 어려움이 있었으니, 연구를 위한 자금부족과 건강문제가 있었고, 남편 피에르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등 많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리는 계속하여 연구를 이어나가며 두 딸을 홀로 키워냈다. 이후 마리 퀴리는 1934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 방사성 물질을 연구해 온 결과 많은 양의 방사능 노출로 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과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마리와 피에르는 1955년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장되는 팡테옹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과학자로서의 뛰어난 업적을 세운 그녀는 여성의 과학적 진출이 어려웠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연구를 지속하여 큰 성과를 이루어 오늘날 의학, 산업등 많은 분야에서 그녀의 과학적 지식과 연구가 끊임없이 활용되고 있다.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이해해야 할 뿐입니다. 이제는 더 많이 이해할 때가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덜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마리 퀴리-
과학은 일상적인 사고의 정교화일 뿐입니다.
-마리 퀴리-

2. 업적

마리퀴리는 새로운 방사성 원소인 폴로늄과 라듐을 최초 발견하였다. 이 발견으로 인하여 방사능 연구에 큰 진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녀는 방사능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방사능이 원자 내부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내어 방사능의 개념을 정립했다. 이것은 원자 구조와 핵 연구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핵심개념이 된다.

마리와 남편 피에르는 방사능 연구의 성과로 인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여성으로서의 최초 노벨상 수상이기도 했다. 이것은 과학분야에서의 여성에 대한 기여도를 처음으로 높이 평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계속되었던 방사능에 대한 연구의 결과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해 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이것은 한 사람이 물리학과 화학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 된다.

 

마리의 연구 성과로 인하여 방사선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기초를 다지게 되었고, 방사능이 암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녀는 이동식 X선 장비(Little Curie)를 개발하여 전쟁 중에 부상당한 병사들의 진단과 치료에 큰 기여를 하였다.

 

마리퀴리는 단순히 연구에만 매진한것이 아니라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하여 파리와 바르샤바에 라듐 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이것으로 인하여 수많은 과학자들이 배출되고 연구소가 방사능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그녀는 파리대학교에서 최초의 여성 교수로 활동하였으며 무수히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과학 교육에 큰 기여를 하였다.

마리퀴리의 업적은 방사능 연구에 국한되지 않고 단순하던 과학적 지식 탐구에서 연구의 다양성과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여성의 학문적 진출을 앞당기고, 방사능의 의학적 적용으로 의학분야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 현재까지도 그녀의 연구결과는 과학사에 중요한 학문적 기반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나는 과학이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과학은 영광과 명예가 아니라 인간의 번영과 진보를 위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리 퀴리-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단지 이해해야 한다.
-마리 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