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화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의 생애와 업적
1. 생애
로절린드 프랭클린은 1920년 런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엘리스 아서 프랭클린은 런던의 상업 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고 어머니 무리에 엘리스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여성이었으며,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아주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믿고있었다. 이러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프랭클린은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성장 후 세인트 폴 여자 학교에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이후 그녀는 케임브리지 대학 뉴넘 칼리지에서 물리화학을 전공하였고 1941년에 졸업하였다.
그녀는 초기 연구로 석탄과 탄소 구조에 관한 것으로 시작하였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동안에 영국석탄기술 연구소에서 일하며 석탄의 물리적 구조를 연구하였다. 이 연구로 석탄이 고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고, 고온에서는 구조가 변화한다는 것을 밝혀내게 된다. 이러한 내용으로 그녀는 1945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1947년 프랭클린은 프랑스파리로 옮겨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에서 일하게된다. 여기에서 그녀는 X선 결정학 기술을 습득하게 되고, 실험 기술을 터득하게 된다. 1951년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 킹스칼리지의 생물리학 연구소에 들어가 DNA의 구조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그녀는 연구의 성과로 DNA가 이중나선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밝혀내게 되고, 이후 런던 버크백 대학에서 바이러스의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폴리오 바이러스와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1956년 난소암 진단을 받게 되었고, 여러 차례의 치료를 이어가며 계속해서 연구를 해 나갔다. 그러나 병세가 악화되어 1958년 3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2. 업적
2-1. DNA 구조의 해석
프랭클린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DNA가 이중 나선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그녀는 킹스 칼리지에서 일하면서 X선 회절 기술을 이용하여 DNA의 구조를 밝히는데 힘썼다. 이 연구과정에서 그녀는 DNA의 두 가지 형태인 A형과 B형을 발견하고 B형 DNA의 사진 "사진 51"을 촬영했다. 이 사진으로 인해 DNA가 이중나선 구조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2-2. X선 회절법의 활용
프랭클린은 X선 회절법을 사용하여 분자구조를 연구하였는데 이 방법을 통해 그녀는 DNA 뿐만 아니라 석탄, 흑연, 바이러스 등의 구조 또한 분석하였다. 이것으로 프랑스에서 연구하던 시절에 탄소 화합물의 구조를 연구하여 탄소가 고온에서 흑연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밝혀내게 된다.
2-3. 석탄과 탄소 연구
프랭클린이 영국석탄기술연구소에서 석탄의 물리적 구조를 연구하여, 석탄이 고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고온에서 구조가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써 탄소섬유와 활성탄 등의 산업적 응용에 아주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였다.
2-4. 바이러스 구조의 연구
버크백 대학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MV)와 폴리오 바이러스의 구조를 연구하였는데 TMV 연구에서 그녀는 바이러스가 나선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RNA가 단백질 내부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연구로 인해 바이러스 구조와 기능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다.
프랭클린은 여성과학자로서 시대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성실함과 뛰어난 연구실력으로 과학계에 아주 큰 기여를 하였다. 그녀의 업적은 이후 여성과학자들의 성장에 아주 큰 영향력을 주었고 과학 분야에서의 성평등 논의에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녀의 연구는 현대 생물학과 분자 생물학의 기초를 다지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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