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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이야기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생애와 업적

by @JUDA 2024. 6. 26.

직접 인체를 해부한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의 생애와 업적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인체 해부를 통해 기존의 해부학적 지식을 검증하였으며, 의학을 배우는 학생들이 직접 해부를 통해 인체를 교육하고 실습을 중시하는 교육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의학 교육의 환경을 바꾸고, 해부학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생애와 업적을 알아보려 한다.

1. 생애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1514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러 세대동안 의학에 종사해 온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약사이기도 했다. 이러한 가정환경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루뱅 대학교에서 예비 의학과정을 마쳤으며, 이후 파리 대학교에서 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때에 그의 해부학 연구도 시작되었다.

 

그는 파도바 대학에서 의과대학 교수로 임명받아 강의를 하였다. 이때에 그는 기존의 수업방식을 깨고 교수인 자신이 직접 칼을 들고 해부를 진행하였다. 당시 해부는 교수가 아닌 외과 의사가 전담으로 하던 일로 교수가 수업도중 직접 해부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것으로 그는 교재만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닌 직접적인 실습과 관찰이 지식을 쌓는 것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후 이러한 방식의 강의는 인정을 받아 여러 대학의 해부학 강의에서도 베살리우스의 강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그는 더욱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해부를 하는 동안 곁에 솜씨 좋은 화가를 두어 정교한 그림을 그리게 하였으며 이는 강의에 활용되었다. 베살리우스는 이후 많은 비난을 무릅쓰고 인체를 직접 해부하여 1543년 새로운 해부학 책인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를 집필하게 된다.

 

후에 베살리우스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황실 의사로 임명받게 된다. 그는 황제의 건강을 돌보며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고, 자신의 해부학 연구도 계속하여 이어갔다. 그는 카를 5세의 뒤를 이은 펠리페 2세 까지도 황실 의사로서 돌보게 된다.

 

베살리우스는 1564년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떠났으나 그곳에서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사망은 과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나,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은 현대 까지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해부학 연구에  있어 직접 관찰과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이것은 현대 의학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지식으로 이해한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2. 업적

2-1. 해부학 연구

베살리우스는 당시 의학계의 최고 권위자인 갈레노스의 이론에만 의존하던 기존 해부학의 오류를 알고 바로잡고자 힘썼다. 그는 직접 인체를 해부하며 보다 정밀하고 면밀하게 살펴 기존 이론의 오류를 증명하였으며,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Dd Humani Corporis Fabrica)"를 출간하였는데 이 책은 뼈, 근육, 혈관, 신경, 복부, 흉부, 뇌 등 인체의 모든 기관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이 책에서  그는 인체의 상세한 해부도를 제공하였고, 인체의 각 부분을 정확하게 묘사하였다. 이 책은 당시 의학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으며 기존 갈레노스의 해부학 이론의 오류를 모두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베살리우스는 이 책에서 갈레노스의 이론은 인간이 아닌 동물을 기반으로 한 이론임을 밝히며 이것을 계기로 인간에 대한 해부학의 기초를 세웠다.

2-2. 황실의사로서의 임무

베살리우스는 "인체의 구조에 대하여"를 출간한 후 그의 과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이 명성은 곧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귀에 들어가 관심을 끌었고, 황실 의사로 임명을 받아 황제의 건강을 돌보게 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직책으로 카를 5세는 그의 과학적 지식과 실력을 아주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그의 의학적 조언을 신뢰하여 퇴임 후에도 카를 5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펠리페 2세의 주치의로서 계속하여 황실 의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한다. 베살리우스는 그간 자신이 공들여 습득한 의학적 지식을 황실의사로서 실제로 적용하며 황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또한 해부학 연구도 함께 이어가며 학문적 업적도 계속하여 쌓아 갔다. 그는 황실의사로서의 경험을 통해 실질적인 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는 그의 연구에 실용적이며 실질적인 관점을 제공하게 된다.

 

베살리우스의 의학적 연구는 현대 의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학문적 업적과 황실의사로서의 경력은 그를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학자 중 하나로 칭송되는 요소가 되었다. 그가 남긴 학문적 연구와 지식은 오늘날까지 도 중요한 학문적 자산으로 남아 현대 의학 발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