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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이야기

연구 방법의 기초를 세운 과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생애와 업적

by @JUDA 2024. 9. 1.

 

◈ 과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생애와 업적

1. 생애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156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콜라스 베이컨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수석 고문이었으며 어머니 앤 쿡은 학문적으로 매우 뛰어난 여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베이컨은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하고, 어린 시절부터 학구열이 남달랐다. 프랜시스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공부했다. 그렇지만 당시의 고전 철학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된 그는 이후 법률 공부를 하기 위하여 그레이스 인에 입학하였으며 1576년 프랑스 대사관에 소속되어 파리로 건너가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외교와 정치에 대해 배우며 많은 경험을 쌓았으나, 1579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중도에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 후 프랜시스는 법률가로서 경력을 시작하여 1584년에는 하원의원으로 처음 선출되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1세 시절에 정지척으로 입지를 다져갔으며, 1603년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기사작위를 받게 되었다. 이후 1618년에는 대법관이라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자만 1621년 부패 혐의로 정치경력이 끝나게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과학자로써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방법론은 근대 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으며, 17세기와 18세기 유럽의 과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실험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였고, 이것은 오늘날 과학적 연구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정치적으로 경력이 단절된 이후 그는 학문 연구에 계속하여 전념하였으나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악화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1626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결국 닭고기를 얼려보는 실험을 하던 중 감기에 걸려 결국 사망하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2. 업적

베이컨은 과학적 방법론을 확립한 것으로 과학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당시의 학문적 지식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깊게 의존하고 있음을 비판하며 경험적이고 관찰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게 된다. 그는 1620년에 저서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에 이러한 내용을 반영하여 출간하게 되고, 여기에서 베이컨은 귀납법을 강조하며, 과학적 연구가 단순한 이론적 추론이 아니라 실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것을 지성의 발전을 저하시키는 우상에 빗대어 '이드라(Idola)로 부르며 네 가지의 이드라인 동굴의 이드라, 시장의 이드라, 극장의 이드라, 즉 우상으로 이드라를 정의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들을 분류한 것으로, 자연철학이 이러한 우상의 폐단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오류들을 극복하여야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몸소 실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보편적 지식으로 확정하는 방법인 귀납법을 새로운 자연과학의 연구방법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베이컨의 이러한 방법론은 이후 근대 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의 과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실험적인 방법론을 도입하였고, 이것은 오늘날 과학적 연구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는 "새로운 아틀란티스"라는 미완성 소설을 통하여 과학 연구가 사회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상상력 있게 제시하였고, 이 책에서 그는 솔로몬의 집이라는 가상의 연구 기관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식과 실험결과등을 연구하며 오류를 줄여나가며 한 사람의 독단적인 주장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협업하고 검증하는 과학 공동체를 제시한 것으로 이는 오늘날의 연구소나 과학 아카데미와 유사한 형태로 그려졌다. 베이컨의 이 같은 생각은 이후 여러 과학 기관의 설립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비록 정치적으로 실패하였으나 그의 철학적 지식과 과학적 방법론은 오랫동안 많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사상은 영국과 유럽의 여러 학교에 영향을 주었으며, 근대 과학 혁명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론은 이후의 과학적 발견과 혁신에 필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연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현대 과학사에 큰 형향을 준 인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지식은 힘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 -

읽는 것은 완전한 사람을 만들고,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만들며,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 프랜시스 베이컨 -